[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②불꽃 같은 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

 [높고 쓸쓸한 영혼, 여류작가들 이야기] ②불꽃 같은 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


글: 김대유 서영대 외래교수/ 교육학 박사

고통과 고독이 만나면 무엇이 나올까? 물빛 그리움이 나오지 않을까?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의 가슴에 깃든, 그러나 무엇보다 2등 인류로 살았던 여성들의 그리움은 무슨 빛깔이었을까? 숙명 같은 여성의 삶을 딛고 시대의 아픔과 그리움을 독하게 써 내려간 여성작가들의 예술혼 앞에서 문득 숙연해지지 않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아가 차별의 금기로 얼룩진 여성 잔혹사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되었던 그녀 자신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꺼지지 않는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인다. 그 배경과 시대정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치유의 길을 여는 일이다. 언제든 그녀들을 만나는 일은 또한 미래를 여는 마음의 열쇠로 각인되는 일이다. 지난해 본지 교육플러스에 ‘성과 사랑’ 시리즈를 연재하여 단행본 「성, 사랑의 길 –인문학과 성의 만남-」을 출간했던 김대유 교수가 이번에는 역사 속 그리움으로 만나는 ‘여류작가 15인 편’을 연재한다. 김대유 교육학 박사는 경기대에 이어 서영대에서 강의하고 있고,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과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했으며, NAVER 베스트셀러인 「행복한 삶의 온도」를 비롯해 15권의 저서를 집필한 바 있다.<편집자 주>

허난설헌(1563∼1589)의 영정 사진, 동국대 손연칠 교수가 그렸다.

국가폭력에 희생된 천재 시인

사림(士林)이 득세하던 남녀 차별의 시대에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을 직시하고 비판적인 저항시를 썼던 허난설헌(1563~1589)은 강릉 초당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호는 난설헌(蘭雪軒)이고 자는 경번(景樊)이었다. 아버지 초당 허엽(1518~1580)은 화담 서경덕과 퇴계 이황의 문하로 학식과 덕망이 높았고 율곡 이이와 함께 국정을 논하였으며 향약을 도입하여 백성을 구제하고자 노력하였다. 허엽은 슬하에 허성, 허봉, 허난설헌, 허균을 두었는데 언제나 딸 아들 차별하지 않고 나란히 앉히고 공부를 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허엽의 아들들은 모두 조선의 중요한 벼슬에 올랐고 특히 홍길동전의 저자 교산 허균은 오늘날까지 유명세를 타고 있다.

허난설헌은 일찍이 신동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녀는 8살에 저 높은 하늘에 신선이 살고 있고 그 신선과 함께 노닐며 대화를 나눈다는 뜻의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이라는 장편 시를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후에 정조 임금도 이 시를 읽고 감탄할 만큼 명문이었다. 난설헌은 후세에 200여 편의 시를 남겼고 그림 솜씨도 빼어나 그녀가 그린 ‘양간비금도’는 그림 속에 여자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희귀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양간비금도는 지금 보아도 아버지와 난설헌이 하늘을 나는 새들을 바라보는 장면이 담겨 있어서 부녀간의 애틋한 정을 느끼게 한다.

아름다운 땅 강릉 초당에서 한 아름 자기다움을 뽐내며 오빠들과 함께 시를 짓고 문학에 젖었던 소녀 난설헌은 15세가 되어 가문을 중시하는 당시의 풍조에 따라 안동김씨 가문의 김성립에게 시집을 갔다. 내리 5대조가 문과급제를 한 엄청난 가문이었지만, 그러나 남편 김성립은 찌질하고 편협하였고 문과급제는커녕 초시 8등급에 그쳤다. 아들 김성립이 술과 기생질에 빠져 집안을 소흘히 하자 난설헌의 시어머니는 모든 탓을 며느리 난설헌에게 돌렸다.

“여자가 남편을 돌보지 않고 시문이나 짓고 있으니 집안에 망쪼가 들었다”

천재 시인 난설헌의 고통과 고독은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오빠들과 남동생 허균은 불행에 빠진 난설헌을 어쩌지도 못하고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알려지다시피 허난설헌의 비참한 생애는, 그러나 개인적인 운명이 아니라 시대의 이데올로기 정책에 기인한 바가 크다. 조선의 4대 국왕이었던 세종(1397~1450)은 재위 기간에 한글 창제와 북방 개척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겨서 우리 민족의 성군으로 추앙을 받은 사람이지만, 조선 여성들 입장에서는 원망을 살 법한 일도 단행했다. 형식적으로 조선 건국의 강령이자 통치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경국대전을 실제적 이념서로 공인하였고, 그에 따라 경국대전의 악법인 칠거지악, 즉 남편 잃은 여성의 재가 금지와 첩의 자손을 차별하는 서얼 차별제 등을 실정법으로 인정했다. 아직 건국의 기반이 공고하지 못했던 조선 초기에 각종 개혁 입법을 추진하면서 그에 반대하는 보수파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성 억압의 이데올로기를 강화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는다는 구실로 가장 애용하는 방법은 풍기 단속, 미니스커트 금지, 장발 단속 등이었고, 조선시대의 정의 구현은 여성 차별이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여성 차별 등도 모두 독재를 위한 구실이었고, 조선의 유교 역시 여성 차별을 성장의 양분으로 삼았다.

허난설헌 생가 터의 옛 '이광로 가옥'의 사랑채. 허균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사진=오마이뉴스)

이로 인해 조선 사회는 고려 때부터 이어 온 혼인풍속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결혼 초기에 남자가 여자 집에 가서 봉사하고 사는 처가살이(장가)를 폐지하고 여자가 남자의 집에 가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시집살이(親迎)를 도입한 것이다. 사대부는 가부장제였고, 가부장제는 제사를 도구로 삼아 가문의 맥을 잇는 것이기에 제사 음식을 차리고 선영의 사당을 관리 할 노비 역할의 며느리가 필요했다. 명나라의 속국이나 다름없었던 조선이 명나라의 가부장제를 벤치마킹하고자 중국화의 차원에서 친영제를 고집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집살이의 친영제는 백성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딸을 남의 집으로 보내며 한가득 혼수까지 보내야 하는 시집살이가 달가울 리도 없었고 그만한 재물을 마련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친영제는 정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다급해진 조정에서는 모든 양반이 먼저 시범실시의 일환으로 친영제를 실천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세종 때에 시작한 친영제가 신사임당 때는 크게 확대되지 못했고, 그 덕분에 신사임당은 처가살이의 혜택을 보면서 남편과 시댁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신사임당이 결혼한 후에까지 자손을 생산하면서 작품활동을 할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이다.

허난설헌은 불행하게도 친영제의 직격탄을 맞았다. 강릉 초당에서 남녀 차별 없이 아버지에게 글을 배우고 시를 쓰던 난설헌은 15세의 어린 나이에 국가시책인 친영제에 따라 안동김씨 가문에 시집가야 했고, 시대적 조류에 떠밀려 기약 없는 시집살이에 내몰려야 했다. 처가살이의 혜택을 누렸던 신사임당처럼 허난설헌의 조건이 친정이었다면 그렇게 시집의 몰이해 속에서 요절할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세종에서 시작하여 선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시작된 재가 금지, 서얼 차별, 친영제는 여성들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요즘 말하는 가문, 족보 제도가 도입되어 열녀문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남편이 죽은 여성은 재혼이 금지되어 한밤중에 보자기를 뒤집어쓴 채 끌려가는 약탈혼(보쌈)이 유행했으며, 친영제로 인해 시집살이가 성행하고 목을 매다는 며느리가 늘어났다. 가문에 열녀가 나오면 병역과 세금이 면제되는 혜택이 주어지자, 집 집마다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으라는 ‘은장도 열풍’(며느리에게 은장도를 주어 자결하라는)이 불었다. 명예살인과 여성의 노예화가 이익이 되는 조선 사회에서 백성은 신음했고, 한번 노비가 되면 자손 대대로 노비가 되어야 하는 국가관리의 노비제도는 조선을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지독한 신분사회로 변질시켰다. 허난설헌의 불행과 비극은 다른 면에서 보면 국가폭력의 산물이었다.

허난설헌 생가터(사진=강릉시청 홈페이지)

엄청난 비극 속에서

허난설헌은 27세에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예언적 시를 남기고 때가 오자 시에 쓰인 것처럼 한 떨기 꽃이 되어 무참히 떨어졌다. 병사했다는 말과 강물에 몸을 던졌다는 말이 후세에 오고 갔지만 원통하게 생을 마감한 것은 틀림이 없다. 그녀가 26세에 지은 절명시(絶命詩)를 보자.

《 푸른바다가 더 푸른 옥구슬 바다를 적시고 푸른난새는 오색 난새에 어우러졌네 아리따운 부용꽃 39송이(스물일곱) 붉게 떨어지니 서릿달만이 차갑구나 》

1589년 27세에 극심한 스트레스와 상심이 겹쳐 요절한 그녀는 “자신의 시를 모두 불태워라”는 유언을 남긴 채 시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누나의 유지를 받은 남동생 허균은 불태워지고 남은 200여 편의 한시를 추슬러 시집을 냈다. 허난설헌의 비극은 한꺼번에 닥친 집안의 불행에서 비롯되었다. 아버지 허엽은 1580년 돌연 객사하였고, 여동생을 끔찍이 사랑했던 오빠 허봉은 난설헌이 타계하기 1년 전 1588년에 갑자기 사망했으며, 슬하에 아끼고 사랑했던 아기 둘, 아들과 딸은 초년에 병사했으니, 수년 만에 그녀의 가족 거의 모두가 그녀의 곁을 떠난 셈이다. 누군들 이 지경이 되면 살아갈 이유조차 찾기 어려운 법이다. 난설헌에게 불행 중 다행이라면 남동생 허균의 더 비극적인 죽음을 보지 못하고 타계한 것이다. 허균은 광해군을 섬기다가 역적죄로 누명을 쓰고 사지를 찢겨 죽이는 거열형을 당했고, 가문은 조선조가 망할 때까지 복권을 못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들, 허씨 가문의 아버지와 남매들은 당대에 ‘허씨 5문장’으로 명성을 날렸다.

난설헌이 연이어 어린 두 딸과 아들을 잃고 쓴 시다.

哭子(곡자, 자식을 잃고 울다)

《 지난해에 귀여운 딸을 잃었는데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마저 잃었구나 가슴이 메어지도다! 광릉의 흙이여 작은 무덤을 나란히 마주 세웠네(하략)》 허난설헌

난설헌집(사진=허균허난설헌기념관,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한류 열풍을 몰고 온 난설헌의 한시

허난설헌이 중국에 알려져 글로벌 여류시인으로 높게 평가받은 배경에는 세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바로 삼 남매 중 첫째인 허봉(許鳳)의 역할이었다. 난설헌보다 12살 연상인 허봉은 명나라 사신의 접빈사 등으로 일하면서 중국을 드나들었고, 그때마다 명나라에서 최신으로 유행했던 이태백과 두보의 시집을 비롯한 당나라의 문학작품을 가져다가 누이 난설헌에게 주었다. 난설헌이 당시 조선의 주류문학인 송나라의 문학을 뛰어넘어 최신의 흐름인 당나라의 문학을 수용하고 그에 걸맞은 시를 쓴 것이 중국의 문인들에게 각광을 받기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송대의 문학이 당대의 문학으로 진보하는 시기에 당시(唐詩)의 운율로 써진 난설헌의 시는 앞서가는 국제적 문학의 조류를 반영하였다. 그 내용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는 놀라운 일이었다. 당연히 중국의 문단에 허난설헌 열풍이 불만한 당위성을 지닌 것이었다. 명나라에서 오는 사신들은 조선에 오자마자 허균을 만나 난설헌의 시를 얻고자 앞다투어 달려들었고, 중국에 가져간 난설헌의 시는 중국 문단에서 「조성시선 허매씨, 朝鮮詩選 許妹氏」, 「양조평양록, 兩朝平壤錄」 등의 시집으로 발간되어 널리 퍼졌다. 조선의 어떤 작가도 이와 같은 한류열풍을 불러일으킨 작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오빠 허봉의 개방적 학문 세계가 난설헌에게 끼친 영향이었다. 이는 비유하자면 현대문학을 주도했던 이상, 소월, 백석, 박인환, 윤동주, 정지용 등의 작품이 20세기 초의 글로벌한 작가들인 버지니아 울프, 프란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괴테 등의 작품세계를 통해 한국의 현대문학을 탄생시킨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손곡 이달(李達)이다. 조선조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는 이달은 허봉의 친한 친구이자 영혼의 동지였다. 허봉은 이달을 어린 여동생 난설헌의 시 선생으로 앉혔다. 1대1로 진행되는 시 수업에서 당대 최고의 시인에게 시를 배웠으니 난설헌의 천재성은 갑자기 땅에서 솟아난 것이 아닌 배움의 결과였다. 이달은 양반 이수함과 홍주 관기(관에 소속된 기생) 사이에 태어난 서얼이었지만 시집 「손곡집(蓀谷集)」을 저술하였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송시(宋詩)를 당시(唐詩)로 바꾸어 조선 문단의 흐름 체계를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최경창, 백광훈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렸고, 백호 임제, 고경명, 허봉 등과 어울리며 조선 문단에서 명성을 떨쳤다. 1609년 중국 사신의 접빈사 종사관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서얼 출신으로 평생 벼슬을 하지 못하고 전국을 떠돌며 시를 짓는 일로 소일했다.

손곡 시비(사진=나무위키)

뜬금없는 얘기이지만 필자가 이달에 대해 배운 것은 내 이십 대의 석사과정 때였다. 내가 재학하는 시기에 성균관대 한문학과에는 「한국현대문학사의 시각」이라는 책을 써서 한문학계의 새로운 석학으로 떠오른 임형택 교수와 벽사 이우성 교수, 한시를 가르친 송재소 교수와 한문 소설을 해석하는 이명학 교수가 재직 중이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손곡 이달의 시 세계를 배웠다. 이달은 조선의 신분 차별을 혁파하고자 하는 저항정신을 시에 담았고, 백성들의 비극적인 삶과 탐관오리의 악행을 고발한 두보의 시처럼 고단한 조선 백성들의 삶을 노래했다. 서포만필의 저자 김만중과 허균은 이달의 시에 대해 “신분 차별에서 생기는 울적한 심정과 마음의 상처를 기본 정조로 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의 시어를 오언절구로 살려냈다”는 평가를 했다. 이달은 사후에 그가 지었던 수천 편의 시가 모두 소실되었으나 허균이 암송하고 있던 200편의 시와 홍유형이 간직했던 130편의 시를 묶어서 「손곡집(蓀谷集)」으로 편찬, 오늘날에 전해지게 되었다. 이는 마치 윤동주의 유일하게 남은 유고 시집을 연희전문 후배인 정병욱 교수가 태평양 전쟁의 학병에 끌려가면서 고향 집 대청마루에 숨겼다가 해방 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출간한 사례와 비슷하여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스승인 이달의 시 세계를 본받아 쓴 듯한 난설헌의 저항시는 스승의 시 세계를 빼닮아 읽을수록 가슴이 아프다.

《 양반가의 세도가 불길처럼 성하고 높은 다락에서 풍악소리 울리지만 가난한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려 오두막에 쓰러진다. 어느 날 아침 높은 권세가 기울면 오히려 이웃 백성을 부러워하리니 흥하고 망하는 것은 바뀌어도 하늘의 도리는 벗어나지 못하리라 》 허난설헌

《 밤늦도록 쉬지 않고 베를 짜노라니 베틀소리만 삐걱대며 차갑게 울리는데 베틀에 짜여진 베 한필 결국 누구의 옷이되는가(하략) 》 허난설헌

허난설헌이 신분 차별의 모순을 지적하고 사회 현실을 직시하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 배경에는 이달의 시 세계가 작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답다. 아름다움이란 ‘한아름 자기다움’이니, 스승과 제자의 시대정신이 한아름 아름다울 뿐이다.

세 번째는 남동생 허균이다. 홍길동의 저자 허균은 자식마저 모두 잃고 시집살이에 요절한 누이를 슬퍼했고, 그 천재성을 안타까워했다. “나의 누이는 어질고 문장이 좋았으나 그 시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늘 누님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허균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허난설헌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허난설헌의 시 수천 편이 아궁이 불에 태워지고 겨우 기억에 남은 시 200여 편을 추슬러 시집을 냈다. 난설헌의 시가 중국의 문인들에게 각광을 받은 이유는 난설헌이 신비한 동방의 여류시인이고 시가 아름다워서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는 당대에 최신 유행을 타던 당시(唐詩)의 변화에 맞추어 지어졌고, 이달을 비롯한 허봉과 고경명 등의 ‘唐詩 문학파’, 즉 엄연히 조선 집단지성의 일원으로 대접받았기 때문이었다. 현세의 삶은 고통과 고독으로 점철되었으나 역사 속의 그녀는 조선 중기 최고의 문인이었다.

우리나라 여학교의 교가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었던 구절은 “덕행은 신사임당, 문학은 허난설헌”이다. 하얀 교복에 갈래머리를 딴 여고생들이 교가를 부를 때, 허난설헌의 고통과 고독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여학생은 없었겠지만, 역사 속의 그녀가 백성의 고통을 지적하고 여성들의 고독을 안스러워 했다는 것을 언제든 알았으면 좋겠다.

허난설헌(왼쪽)과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와 허난설헌

동서양의 차이가 있지만 시대의 분기점을 형성한 두 여류시인의 문학세계에 공통점이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바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현대문학의 길을 열었던 버지니아 울프(1882~1941)와 조선조 당시(唐詩) 문학의 사조를 이끌었던 허난설헌 두 여인의 이야기이다.

비운의 두 여류시인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교수와 프랑스 귀족의 딸을 부모로 두었고 어려서부터 오빠들과 함께 홈스쿨링을 통해 문학적 감수성을 기르던 버지니아 울프처럼 허난설헌 역시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아버지(허엽)와 명문가 강릉김씨 어머니 밑에서 오빠 허봉, 남동생 허균과 함께 나란히 글을 공부하면서 천재성을 키웠다. 버지니아 울프는 남편 레너드 울프의 도움으로 수필과 소설을 출간할 수 있었고, 허난설헌은 비록 사후였지만 당대의 뛰어난 문인인 남동생 허균(許筠)에 의해 시집을 내어 중국과 일본에 ‘허난설헌 한류열풍’을 불게 하였다.

두 시인의 비극적 요소에도 닮은꼴이 있다. 버지니아는 매일 오후가 되면 오빠들에게 빅토리아 시대의 예의범절과 의복 검열을 받아야 했고, 여자에게 금지된 대학에도 끝내 입학하지 못하였다. 허난설헌은 15세에 안동김씨 가문의 김성립과 결혼한 이후 천국에서 지옥으로 직행한 듯한 고통을 맛보아야 했고, 지독한 시집살이에 찌질한 남편의 시기심과 냉대에 시달렸다. 남편 김성립은 내리 5대째 문과에 급제한 가문의 후손답지 않게 별시 8급 시험에 붙었을 뿐 벼슬살이 하나 못한 못난이로 기방 출입이나 하는 건달이었다. 이와 달리 버지니아는 평생 가족들의 돌봄과 동료 문인들의 인정을 받으며 비교적 행복한 생애를 보냈다. 그러나 두 시인의 최후는 약속한 듯 묵시록적인 과정과 결말을 보여주었다. 버지니아는 자신이 그 시점을 예고한 대로 61세에 코트의 양쪽 주머니에 무거운 돌을 넣고 우즈강으로 걸어 들어가 다시는 살아서 나오지 못했다. 허난설헌은 27세의 생을 요절로 마감했다.

쓸쓸한 영혼의 소유자, 허난설헌에게 거듭 경의를 표한다.

여성 작가들 연재 순서

①버지니아 울프 ㅣ 현대소설의 산파, 귀족 출신 작가로 평민 여성들의 눈물을 닦아 준 페미니스트
②허난설헌 ㅣ 27세에 요절한 천재 시인, 가부장에게 희생당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은 프로 문인
③미우라 아야꼬 ㅣ 일본의 박완서, 일본 현대문학의 총아, 여성의 삶을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접근한 소설가
④루 살로메 ㅣ 릴케, 니체, 프로이드에게 영향을 준 매력적인 여인, 팜므파탈의 상징으로 우뚝서다
⑤황진이 ㅣ 조선 최고의 낭만판 여류시인, 당대의 남성들 심장에 구멍을 뚫은 뜨거운 로맨티스트
⑥에쿠니 가오리 -냉정과 열정 사이, 일본 대중문화의 꽃을 피운 작가
⑦제인 오스틴 - 폭풍의 언덕, 사랑과 지성의 조화를 가르쳐 준 소설가
⑧박완서 ㅣ 언제든 삶의 생로병사를 저마다의 가슴으로 품게 해준 따뜻한 작가 박완서
⑨요시모토 바나나 - 일본 젊은이들의 아픔 꿈을 치유하고자 몸부림친 잔혹 작가
⑩에밀리 디킨슨 -모더니즘의 시를 연 천재, 평생 흰옷만 입은 여인
⑪박경리 ㅣ 한국의 현대문학을 업그레이드한 위대한 작가 박경리
⑫시오노 나나미 - 로마인 이야기, 일본스러움으로 로마사를 재조명하여 매우 성공한 작가
⑬실비아 플라스 -스스로 페미니즘의 순교자가 된 맹렬한 시인
⑭시몬느 드 보봐리 - 제2의 성, 페미니즘의 어머니, 스스로 계약결혼과 여성의 독립적 삶의 모델이 되다
⑮신경숙 ㅣ 질박하고 깊은 사유가 담긴 작품들로 한국의 현대소설 대중화에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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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대유 교수(교육학 박사)는 현재 경기대 교육대학원에 이어 서영대에 재직하면서 교육학, 인문학, 보건교육을 강의하고, 한국교육연구소 부소장 및 아카데미 운영에 힘을 쏟고 있다. 저자는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위원, 대통령자문 교육 혁신위원회 위원, 국가 청소년위원회 정책자문위원, UN 아동권리협약 옴부즈퍼슨,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공동대표, 한국여성의전화 평등모임 책임 간사 등을 역임하며 여성‧청소년‧교육 분야의 사회운동에 몸담아왔다. 저서에 《행복한 삶의 온도》, 《동료효과》, 《보건교육의 인문학적 성찰》 등 15권이 있으며, KBS 아침마당에 출연하여 부모들에게 학교폭력예방법을 상담했고, 교육전문지 「교육플러스」와 「세종인 뉴스」의 칼럼니스트로 다양한 주제의 글쓰기를 전개하고 있다. ㅣ 출처 : 교육플러스(http://www.edp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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