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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정행검덕(精行儉德)과 육우(陸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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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정행검덕(精行儉德)과 육우(陸羽) 글: 홍장호 이번 사자성어는 정행검덕(精行儉德. 면밀할 정, 행할 행, 검소할 검, 덕 덕)이다. 앞 두 글자 ‘정행’은 ‘단정하게 행동하다, 즉 일상에서 근신(勤愼)에 힘쓰다’란 뜻이다. ‘검덕’은 대략 ‘검소하게 생활하다, 즉 과도한 욕망을 절제하다’란 뜻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일상이 사회적 규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유념하고, 내면 세계도 나태해지지 않도록 향상심(向上心)을 견지하는 삶의 자세’를 의미한다. 다성(茶聖) 육우(陸羽. 733-804)가 저술한 ‘다경(茶經)’에서 유래했다. 정행검덕(精行儉德). 바이두 중국에서 차(茶) 분야 최고권위자로 대접받는 육우는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다. 하루는, 한 스님이 마을의 돌다리 아래에 버려진 3살짜리 사내아이를 발견한다. 스님과의 이 인연으로 육우는 사찰에서 성장했다. 불교 경전과 교양 수준의 학문, 그리고 차 끓이는 요령도 스님들로부터 배웠다. 사춘기 무렵, 그는 바깥 세상을 동경하기 시작한다. 충동적으로 사찰을 나온 후, 지방을 순회하는 유랑 극단(劇團)에 합류했다. 유랑 극단에서 광대 배역을 떠맡았던 그는, 새로운 지역에 도착하면 시간을 쪼개 차에 대한 자료들을 꾸준히 수집했다. 육우(陸羽. 733-804). 바이두 당시 당(唐)나라엔 상류층을 중심으로 차 마시며 교제하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차에 관한 제대로 된 지식을 가진 전문가는 매우 드물었다. 여러 지방을 떠돌며 이런 현실을 직접 확인한 육우는 차에 관한 전문 서적을 저술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20대 초반에 세운다. 24세에,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고 갑자기 어수선한 시절로 변했다. 그도 돌아다니는 삶을 멈추고 한 곳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차에 대한 육우의 재능과 열정을 알아본 후견인과의 좋은 인연도 하나 둘 생겨났다. 덕분에 문학과 사서삼경(四書三經) 등 당시 지식인이 갖춰야할 기본 소양을 늦게나마 그도 제대로 학습할 수 있었다. 27...

[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오사필의(吾事畢矣)와 문천상(文天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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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오사필의(吾事畢矣)와 문천상(文天祥) 글: 홍장호 이번 사자성어는 오사필의(吾事畢矣. 나 오, 일 사, 마칠 필, 어조사 의)다. 앞 두 글자 ‘오사’는 ‘내가 해야 할 일’이란 뜻이다. ‘필의’는 ‘이제 마무리됐다, 즉 마침내 끝맺었다’란 뜻이다. 이 두 부분이 합쳐져, ‘맡은 책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치다’란 의미가 만들어졌다. 문천상(文天祥). 바이두 문천상(文天祥. 1236-1283)이 처형 당일 원(元)나라 옥졸과 나눈 대화에서 유래했다. 지금도 ‘오사필의’는 ‘난관을 헤치고, 나에게 부여된 임무를 완수했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문천상은 남송(南宋. 1127-1279)의 정치가 겸 장수였다. 천상은 그의 자(字)고, 본명은 운손(雲孫)이다. 남송 최후의 승상(丞相)이기도 했던 그는 장세걸, 육수부와 함께 ‘남송삼걸(南宋三傑)’로 칭해지기도 한다. 그가 태어날 즈음, 부친은 한 아이가 보라색 구름을 밟으며 걷는 태몽을 꿨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던 그는 피부가 곱고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21세엔 과거에 1등으로 합격하고 진사(進士)가 됐다. 그러나 당시 남송의 국운(國運)은 그야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였다. 지금의 동유럽까지 전선을 확대하며 무패(無敗) 신화를 이어가던 몽골군과 힘겨운 전투를 벌이며 아슬아슬하게 연명하고 있었다. 몽골군의 위협이 더욱 거세지자 고위 관료들은 수도를 옮기기로 결정한다. 문천상(文天祥) 동상. 바이두 수도 이전은 사기를 떨어뜨리는 궁여지책(窮餘之策)일뿐이다. 오히려 결연하게 적에 맞서야 살 길이 열린다. 이렇게 판단한 문천상은 비록 신진 관료 신분이었지만 천도(遷都)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다. 나약한 조정은 바로 그를 면직시켰다. 그러나 그는 의기소침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몽골 기병(騎兵)에 정면으로 맞서는 길을 집요하게 모색한다. 전투 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약 1만 명 정도의 의병을 모집해 직접 지휘했다. 집권층이 교체되고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자, 자신의 안위를 전혀 따지지...

중국의 욕 ‘왕바단(王八蛋, 거북 알)’의 유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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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욕 ‘왕바단(王八蛋, 거북 알)’의 유래는                           중국의 욕 '왕바단(王八蛋, 거북 알)' 의 유래는 - 중앙일보 글: 중앙일보 중국에서 ‘거북알(王八蛋, 왕바단)’이란 말은 매우 심한 욕이다. 욕을 먹는 사람뿐 아니라 부모까지 욕되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왜 중국인들은 닭이나 오리, 도마뱀 또는 뱀이 아닌 ‘거북 알’을 욕으로 골랐을까? 거북이 중국인에게 미움을 산 가장 것은 오해에서 시작됐다. 그 오해는 한(漢)나라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한(東漢) 시대 문자학에 정통했던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거북 구(龜)자를 이렇게 해석했다. “거북은 바깥은 뼈가 안에는 살이 있는 동물로 뱀에서 유래했다. 그 머리가 뱀 머리와 같이 생겼다. 천성적으로 어깨가 넓고 수컷이 없다. 거북과 자라는 뱀을 수컷으로 여긴다”고 적었다. 명(明)대 작가 사조제(謝肇淛)는 수필집 ‘오잡조(五雜俎)’에서 “거북끼리는 교미할 수 없으므로 거북 암컷이 뱀과 짝짓기를 했다”고 풀이했다. 송(宋)대의 책 ‘비아(埤雅)’는 “(거북은) 수컷이 없어 뱀과 짝을 이뤘다. 거북과 뱀 사이에 나은 것을 현무(玄武)라 부른다”고 적었다. 즉, 고대 사람들은 거북이 암컷만 존재한다 믿었다. 따라서 거북알(王八蛋)은 거북과 뱀이 교미해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대인들이 파악한 거북의 특징이 훗날 사람들에게 전해져 ‘부인이 외도해 난 아기’가 자연스레 거북알(王八蛋)로 불렸다. 사실 이런 설명은 그럴 듯 했다. 거북은 등에 큰 껍질이 있고 가슴에도 갑판이 있어 암수가 교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머리가 뱀을 닮았다는 설명을 보고 두 동물을 부부로 여긴 것이다. 또, 틈만 있으면 파고드는 뱀의 성질을 볼 때 뱀이야말로 껍질로 둘러 쌓인 거북과 교배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

왕빠단(王八蛋)은 왜 욕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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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빠단(王八蛋)은 왜 욕이 되었는가?                             중국의 욕 '왕바단(王八蛋, 거북 알)' - 중앙일보 글: 손옥상(孫玉祥) 중국말 중에서 욕하는 말로 가장 심한 것은 "왕빠단(王八蛋, '왕빠'는 거북,자라를 의미하고, '단'은 알을 의미한다)" 이다. 이 세 글자는 너를 "왕빠단"이라고 욕하는 것 외에 너의 부모를 "왕빠(王八)" 이라고 욕하여 일거양득을 거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왕빠단" 이 욕하는 말이 된 것일까? 다른 동물의 알도 많다. 예를 들어, 달걀(鷄蛋)도 있고, 오리알(鴨蛋)도 있으며, 심지어 다른 파충류의 알도 있다. 예를 들면, 도마뱀의 알(蜥蜴蛋)도 있고, 뱀알(蛇蛋)도 있다. 왜 이것들은 욕하는 말이 되지 않은 것일까? 왕빠는 도대체 중국인들에게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악독한 욕이 되어버린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사람들의 왕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오해는 개략 한(漢)나라때부터 시작된 듯하다. 동한(東漢)때 '오경무쌍(五經無雙)' 으로 불리던 경학자, 고문자학자인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 에서 이렇게 적었다: "거북(龜) 은 구(舊)이다. 바깥은 뼈이고 안은 살로 되어 있고 뱀(它, 蛇와 같은 의미)을 따른다. 거북의 머리는 뱀의 머리와 같다. 천지의 성은 어깨가 넓고 수컷이 없다. 거북,자라와 같은 류는 뱀은 수컷으로 삼는다." 후인들은 <<오잡조(五雜俎>> 에서 이렇게 말한다: "거북끼리는 교합할 수 없다. 그 암놈은 뱀과 교합한다." 그리고 <<비아(埤雅)>> 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어깨가 넓고 수컷이 없어서, 뱀과 짝을 이룬다. 그리하여 거북과 뱀이 교합하므로 현무(玄武)라 한다."...

중국식 '언어부패'와 '문자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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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식 '언어부패'와 '문자유희'                                       부패의 언어 | 윌리엄 배스 - 교보문고 글: 풍청양(風靑楊) 무엇이 중국특색인가? 어떤 네티즌은 인터넷에서 이렇게 희화하여 적었다: 보호성철거, 휴가식치료, 콘돔식강간, 경도형추돌, 환상형자유, 시험적자살, 계약식바가지, 정책성조절, 후퇴성개혁, 미친개식부패, 구조형총살, 정확성착오, 보호성훼멸, 예절성수뢰, 정책성가격인상, 낚시성집행, 확인성선거, 임시성직원, 보평성무치, 임시성강간, 은폐성수입. 이것들은 모두 전형적으로 중국의 언어특색을 보여준다. 사고와 문제를 포장하는 것이다. 아마도, 중국의 문자가 박대정심해서인지, 중국의 언어가 고심막측해서인지, 많은 관리들은 '문자유희'를 마음껏 즐기고 있다. 부정적인 사태가 벌어지면, 중국 한어의 어휘는 확실히 풍부하다. 영원히 체면을 차릴 수 있는 관련단어와 대체어를 찾지 못할까봐 우려할 필요가 없다. 이들 단어는 써도써도 끝이 없는 화장품과 같다. 난감한 사건에 화장을 잘 한다. 아마도 대변도 생화로 고칠 수 있을 것같다. 그리고 죽은 시신도 살아있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 것같다. 그러나, 화장을 아무리 하더라도 고유의 추악함은 감출 수가 없다. 장례식장의 화장사가 아무리 능력있어도 죽은 자를 살릴 수는 없는 것이다. 중국언어의 복잡신기함은 세상사람들이 모두 다 안다. 과거 관료사회에는 도필서리(刀筆書吏)라는 말이 있다. 늙은 관리가 사건을 처리하면 한 마디로 사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 살아있는 사람도 단두대로 보낼 수 있다. "사출유인(事出有因), 사무실거(査無實據)"와 "사무실거(査無實據), 사출유인(事出有因)"은 순서만 바꾼 것이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게 된다. 전자는 무죄석방될 수 있고, 후자는 소송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