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租界)의 진상 (1~2)
조계(租界)의 진상 (1~2) 상하이 조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 글: 비성강(費成康) 민족주의분노청년(분청)들이 근대사를 언급할 때면 항상 이를 갈면서 "조계"를 언급한다. 필자는 여기에서 조계의 진상을 알려주고, 여러분들의 원한을 해소시켜주고자 한다. 조계의 진상 하나: 많은 조계는 중국측이 자원하여 설정하였다.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중국 최초의 조계는 상해조계(上海租界)이다. 그러나, 그 내력에 관하여 애국분청들은 전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고 "분명히 영국군대가 총을 들고 대청국을 핍박하여 얻어낸 것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1842년의 <남경조약>에는 영국인이 상해에 거주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했지, 영국인에게 조계를 설정해주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다. 기실, 상해도대(上海道臺) 궁모구(宮慕久)가 중국인과 영국인이 섞여 살면서 사고가 나면 자신의 관직에 영향이 있을까 우려하여, 스스로 상해현(上海縣) 하탄(河灘)의 불모지를 영국인에게 떼어주면서 조계로 삼은 것이다. 궁모구와 영국인이 체결한 상해조계설치에 관한 조약은 <상해조지장정(上海租地章程)>인데, 1845년에 체결되었다. 당시 영국군대는 일찌감치 대청국의 토지에서 모조리 철수했고, 상해도대 궁모구와 담판하고 체결한 사람은 영국영사 조지 발포어(巴富爾)로, 그는 문관이지 무관이 아니고, 영국군대는 담판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이 <상해조지장정>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상유의 내용을 분명히 한다: 이전에 대청도광22년(1842년) 상유를 받았다: 영국인이 광주, 복주, 하문, 영파, 상해등 5곳 항구에서 통상무역할 것을 허락해주도록 요청했고, 각국의 상인들이 가족을 데리고 거주하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