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樣한 인류의 意思疏通 방법

기획논단
多樣한 인류의 意思疏通 방법
漢字는 認識기능을 위해 최첨단의 高速記號이다
 
安秀吉
서울대학교 名譽敎授 / 本聯合會 理事

현대에 들어서서 TV 등 매체의 발달에 따라(cold media) 다른 나라에서도 言語機能의 약화현상을 볼 수 있지만 새 시대를 맞게 된20세기 漢字圈에서는 모두가 총력을 기울려 언어기능을 확장 중인 속에서 유독히 한국에서만 漢字敎育을 기피해서 人災性 退步現象을 일으키고 있다.
출발점의 ‘言語’의 話頭로 돌아와서, 프러시아 이전 독일의 구석구석에서 보는 바와 같은 領主 등 소규모의 王들의 暴政이 심했던 서양에서는 약한 백성들 입장에서 사람들간의 團結이 더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旣述한 바와 같이 ‘條理 있는 언어’가 발달했다.
그곳 言語 들의 특성은 ‘소리가 절대적으로 優位’라는 것이었고, 아시아에서는 그 옛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象形文字(Hieroglyph)나 楔形문자(Cuneiform: 우리말 ‘글/契’자가 들어 있음에 주의) 等 ‘記號’가 소리에 못지 않게 중요했다.
옛날에는 아시아와 유럽을 東西보다 南北으로 分割, 유럽은 따라서 北部지방을 나타냈던 것인데 당시 유럽에는 文字사용이 거의 없어서 ‘말’이란 절대적으로 音聲言語였던 것이다.
인류를 위한 ‘口語’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위해서는 音聲言語가 전부이고 그러한 연유로 해서 “文字는 이 音聲言語를 기록하기 위해서만 뜻을 갖게 된다”는 ‘歐美式 언어관’이 생긴 것이다. 지금 한국의 일부 젊은이는 이 방향으로 誤導되고 있다.
敎會 소속 筆耕士 들의 일을 제외하면 구텐베르그(Gutenberg)의 聖經 인쇄 이전에 유럽에 ‘책’이라는 것은 거의 없었다. 예를 들어 舊約聖經을 뜻하는 ‘Bible’라는 단어는 그 原義가 ‘책 들’이라는 뜻이어서 그 ‘기록된 글’ 들이 西洋에 도입됐을 때 그곳에는 책이 없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였으며, 파리의 외방전도회관에는 辛未洋擾 때 프랑스 水兵들이 “韓國에는 民家에 까지 집집마다 책이 있음”에 놀라 고향에 쓴 편지가 지금도 展示되어 있다.
그 정도 당시 서양사람들과 ‘글’과는 소원했던 것이다. (참고로 東夷族의 문자에 대한 寄與度는 ‘契約’이라는 ‘契’도 우리말 ‘글’임으로 해서도 나타나고, 상기 수메르(Sumeria)의 楔形文字(Cuneiform)를 나타내는 漢字글자의 경우 ‘契’자에 ‘나무 木’변이 달린 것을 갖고 音寫 記錄을 할 정도 ‘문자’에 대한 한국말, 그리고 東夷族의 寄與는 컸다.)

5. 文字사용은 東洋이 먼저이고 筆墨의 대량보급도 일렀다

동양의 고전 山海經은 禹임금(BC 2224) 때 저작됐다고 하고 蚩尤天皇과 싸운 黃帝(BC 2679)시대에도 素女經 등 무수한 竹書가 남아있는데 서양의 겨우 始初로 셈(Semite) 語族인 페니키아 사람들의 子音밖에 없는 알파벳(Nordic Semitic)을 도입했으나 그것이 그리스(Greece) 사람들의 ‘母音’補充을 통해서 음성언어의 記錄手段으로 제대로 정착된 것은 BC800 ~ BC700 정도이니까 즉 幽王, 平王 등 周王朝의 중간쯤 될 무렵이다. 결국 서양은 문자가 사실상 없는 時代가 우리보다 거의 1500년이 더 길고, 그 후에도 사람들이 筆墨은 멀리 하고 있어서 글자의 대량보급이 늦어 ‘음성위주’의 양상이 오래 끌었다.
따라서 서양에서 王들은 백성들에게 王令을 포고함에 있어서 소리로서 외치는 ‘Herald’ 즉 ‘布告官’을 썼음에 반해서 당시 人文이 발달된 漢字圈에서는 王令示達에 ‘榜’을 활용했다. 이 榜에 의한 王令示達은 백성에게 그 뜻을 알림에 있어서 시간에 拘碍받지 않고 장기 揭示를 할 수 있었다는 점과 따라서 사람들이 읽는 데에 더 시간을 걸어 完全하게 理解할 수 있었고, 또한 支配領이 광범위해서 言語들 사이에 乖離가 있을 경우도 백성들에게 王意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뜻에 있어서 一日의 長이 있는 것이다.
解釋에 있어서 모호한 점이 있는 경우도 있고, 영토가 넓어서 方言 등이 심할 경우(오늘날 중국의 경우도 그 광대한 여러 地域들 間에 ‘通譯業’과 ‘飜譯業’이 성행하고 있다)도 있어서 ‘기호를 통한 意思疏通’이 필요하다는 것은 自明하고 그렇게 해야 정확한 communication(意思疏通)이 가능하다는 것은 認定해야 할 것이다. 그 옛날 중국의 역대 朝廷에서 혼란 없이 ‘기호를 통한 意思疏通’에 쓰였던 것은 ‘白話’나 ‘중국어’가 아니고 우리 조상이 능했던 “漢文”이었다.
서양사람 입장에서 보았을 때 동양에서 ‘작고 까다로운’ 記號(漢字)가 들어있는 책들에 매달려 있는 꼴은 기이했을 것이고 쫀쫀하기까지 보였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제스처- 가 중요하고 또 이에 못지 않게 ‘소리의 울림에 의한 감정 전달’은 必須의 것이었다고 본다. 목소리는 모든 감정표현의 중요한 方法이어서 西洋사람들을 위해서 어린 시절 잠자리에 들 때 어른들에게 ‘이야기’를 듣는 다는 것이 각별히 중요한 이유도 알만 할 것이다.
漢字圈에서는 心象이 풍부했고 나아가서 書道 등도 발달해서 글(크기와 배치 등)의 아름다움을 개척해서 音聲으로는 전부가 나타나지 않는바 ‘글자를 쓰는 아름다움’을 겸비한 ‘종합적인 의사소통방법’에 도달했던 것이다.(서양의 컬리그래피(calligraphy)는 폰트(font)의 발달로서 필경사들은 같은 字形을 지향해서 숙련공의 양상이 강했다.)
동양의 ‘千字文+童蒙先習’ 학습 등 書堂 공부가 기본이었던 풍조에 비해 西洋사람들은 오히려 공부를 꼭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意思疏通 방법은 거의 완전히 音聲뿐이었던 것이다. 지금 한국의 일부 젊은이는 우리의 言語도 철저하게 ‘音聲’뿐인 것으로 誤導되고 있는 데 그것은 계급투쟁의 일환이다. 그러나 한국은 앞으로도 ‘無學’이 이끌게 되는 나라가 아니다.

6. 발음 편이를 위한 영어의 스펠링 변화

원래 사람의 기억 機能이란 ‘大腦에 의한 것’과 ‘聽覺에 의한 것’ 두 가지가 있는 속에서 그들을 위해 ‘聽覺’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절대적인 것이다. 그들은 외국어를 배우면서도 우리가 본래 만들어 썼던 ‘單語帳’이란 전혀 쓰지 않는다. 그러나 새 낱말을 한 두 번 듣는 것만으로 記憶을 할 정도 聽覺기억력이 發達하고 있는 데 그 면에 있어서는 확실히 우리는 따라 갈 수가 없을 정도이다. 반면에 그러한 발음을 머리 속에서 조회(refer)할만한 記號(漢字 等)面에서는 빈약하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앞뒤 단어의 어떠한 조합에 대해서도 (아무리 발음하기가 고약해도) 各各의 단어의 발음을 正確하게 존중하는 것이 요구되는 데(즉 소리는 부수적인 것이었다)에 反해서 西洋의 경우는 문자 字形의 도움 없이 말이 ‘귀에서 입으로’ 무수히 反復使用됐기 때문에 발음하기 쉽게, 그리고 알아듣기 쉽게 口話的 변천이 더 많이 이룩됐던 것이다.
口語的 變遷의 사례를 英語에서 들자면 발음을 쉽게 하기 위해서 스펠링(spelling)이 달라진 경우도 있다. 그 例를 들자면 ‘b’나 ‘p’발음의 바로 앞에 붙은 ‘in’은 ‘im’으로, 그리고 ‘en’은 ‘em’으로 진화했다. 더 구체적인 例를 들면 ‘incident’, ‘enforce’ ‘involve’는 in이라는 接頭辭 뒤에 따라오는 것이 ‘c, f, v’ 等(입술을 닫지 않은) 글자이니까 原音價를 그대로 유지하지만 ‘imparity’와 ‘embarkation’ 등은 뒷따른 발음이 ‘b’와 ‘p’니까 발음 편의상 자연히 ‘im’이나 ‘em’발음이 되는 것이다.
‘Input(入力)’라는 공학용어 등은 그대로 ‘in’으로 남아 있으나 이러한 단어는 活字문화가 발달된 비교적 최근에 도입되어 元來 단어의 表記에 구속되고 있는 것이다.

7. 언어의 변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전혀 文字기록이나 어른들의 牽制를 받지 않는 일부 젊은이들 간의 流行語 등은 때로는 처음부터 어른들의 理解不能을 겨눈 것일 때도 있지만, 一般的으로 유행하는 그 당시도 階層차이와 地域차이 等으로 해서 相互間 이해가 어렵고, 다른 分野의 用語와의 겹침이나 混線도 檢證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意思疏通(communication)’에 혼란이 생기고 따라서 相互理解에 더 많은 설명과 시간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시대를 넘은 情報交換이라는 巨視的 견지 等에서 보았을 때 여러 混亂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일이 아니다. (언쟁과 변호사의 천당)
중국의 簡字體도 簡字를 割當함에 있어서 조직적이 못돼서 字義의 겹침 등 혼란이 시작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앞으로는 上述 王朝문화인 ‘漢文’의 解讀과 作文 등에 있어서 우리나, 日本에 비해서 유리할 것이 없게 되는 것이다.
중국은 漢字를 日用하지만 ‘漢文’이라는 王政文化에 관해서는 宗主國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여러 나라, 여러 왕조에서 행정용으로 ‘漢字와 漢文’을 썼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기여가 지극히 컸다. 옛 날 대륙에서 明滅했던 정권들의 擧皆가 東夷族이 시작한 것도 사실인 반면 백성들은 漢文과 지나치게 無關係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近世에 와서 학술용 新語의 제정 등을 통해서 漢字를 강력한 현대언어에 편입시킴에 있어서의 日本의 甚大한 寄與도 제대로 평가돼야 할 것이다.

8. 개혁은 꼭 필요한 때에 하는 것이어야

오늘날의 계속된 話頭인 ‘개혁’에 관해서도 재조명을 해야 할 것이다. 언론을 타고 ‘개혁’이란 단어가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無處不當한 힘을 발휘해 왔는데 ‘개혁’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비판적으로 좋은 것으로 통용될 수는 없다. ‘개혁’을 내걸고 처리 안건이 제시 됐을 때 우리 사회는 분위기에 밀려 물러설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사항에 따라 엄밀하게 검토를 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지적되어야 할 것은 원래 역사를 통해 긴 시간이 닦아낸 제도나, 言語 등 사회규약 들을 단시일에 인위적으로 ‘가공’을 하면 混亂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後 산업시대(post-industry)’, 그리고 국제적인 인종간 紛亂의 시대에, 다시 말해 정신 문명이 발달한 아시아圈의 사명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는 때에 우리 나라에 있어서의 그러한 과거와의 단절, 그리고 語文에 있어서의 人災的 混亂은 피해야 할 것이다. 일시적인 정치적 利害關係로 해서 ‘先進國’ 구호를 내세워 감행되고 있는 ‘전통 貶視’가 그대로 방치될 수는 없는 것이다.
중국개혁의 일환으로 행했던 ‘簡字體의 도입’도 잘한 일이 아니었다. 오늘 날 컴퓨-터의 보급을 생각한다면 처음으로부터 그러한 大改革으로 백성들을 고달프게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지금 그러한 文字改革으로 인한 어문생활에 混同이 시작하고 있으니 簡字 ‘改革’은 큰 틀에까지 올라가 보면 잘한 일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9. ‘대중’과 ‘현실’을 내세운 ‘잘못 인정’의 잘못

그리고 아무리 才氣가 번쩍인다 해도 작금의 年少階層의 ‘무리한 유행어’는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하기 쉽고 그러한 逸脫은 나이를 먹고 視野가 넓어짐에 따라 자연히 ‘졸업’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國語院에서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청소년의 어문생활에 오류가 있어도 使用頻度 통계치가 크니까 ‘官認’을 한다”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하는 業務處理라고 하겠다.
지나간 시대에는 言語라고 하면 ‘慣用’이 전부였으나 지금은 言衆 전체가 방송 등을 보고 향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니까 언어의 사용이 잘못되어 가는 경우 이를 지도하고 是正해서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나도 서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문화민족의 도리이다. 漢字기피 風潮 때문에 일어나는 작금의 pleonasm(같은 내용의 단어들을 無知로 해서 重複사용하는 冗語法)이 심해진 것도 사실이니 이를 적극 지도하고 이러한 ‘漢字文盲’의 跋扈를 斷乎히 막아야 할 것이다. (무식한 언어의 범람)
‘언어’란 결국은 言衆이 결정하는 것이지만 그 잘못된 사용은 혼란방지를 위해서 言語當局이 꾸준히 고쳐줘야 한다. 一例를 들어 지금 南韓에서만 인정하고 있는 한국어의 ‘頭音現象’은 허용되는 것에 불과하지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칙’이 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민간이 쓰는 中國말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不知中에 日常語를 變質시켜가면서 썼기 때문에 이 민간 口話의 발음을 音寫해서 표기하는 데에 시대에 따라 다른 漢字가 쓰였고 ‘白話’ 등 흘러가는 언어의 변화를 漢字기록이 붙잡아 發音의 과도한 변화를 막아 주는 양상이 뚜렷했다. (山海經에서도 보면 백성들이 日用해 發音이 變해가는 것을 각 시대마다 漢字로 音寫했기 때문에 같은 말이 시대에 따라서 다른 漢字로 기록된 사정을 郭璞의 註 等을 통해 알 수 있다.)

10. 漢字는 東夷族이 시작해서 여러 王朝가 사용

漢字는 항상 支配層의 것이어서 東夷族이 王權을 잡고 있던 事例가 더 많고, 東夷가 대륙을 지배한 역사가 길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漢字는 중국의 것’이라는 생각에도 修正을 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중국 人民日報에 게재된 “漢字는 東夷族의 창제한 것”이라는 淸凡 陳泰夏 선생의 연구에서 東夷族의 기여를 볼 수 있고 최소한 世宗大王 시대의 典籍에서 보면 韓國語는 ‘眞書’와 ‘諺文(오늘날의 한글)’ 양쪽을 다 우리의 것으로 활용하는 데에 躊躇가 없었음을 쉽게 읽어낼 수가 있다.(東音과 華音 입장은 대등)
世宗大王과 집현전 學士 들은 漢字를 없애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고 ‘漢字발음의 是正(正音)’과 ‘百姓을 위한 口語의 表記기술개발’ 양쪽을 이룩했던 것이고 그 결과로 당시부터 지금까지 韓國語는 더 强力한 것으로 도약했던 것이다.

11. “너희들이 語文에 관해서 뭘 안다고” …세종

世宗大王은 나아가서 『訓蒙字會』를 만들어 그것 한 권이면 짐작이 안 가는 글자가 거의 없게 해서 漢字의 서민 보급(訓蒙)을 꾀하였고, 『月印釋譜』 등 漢字混用의 저서를 발행해서 쉬운 諺文의 덕으로 백성들이 漢字를 배워가면서 原典의 뜻을 漢文 그대로 한 자 한 자 그 뜻을 새겨 터득하게 했던 것이다. (眞書는 계속 宗主된 글자로 남았다.)
서로 선물을 교환하지 (않고 和睦하지) 않으면 비를 안 내리겠다는 “하늘의 뜻”으로 해서 唐과 新羅가 서로를 존중해야 했던(“新羅-西域交流史”에 따르면 그 옛날에 新羅는 ‘중국(China)의 중국(Chine:長城북쪽)’이었다. p141) 것과 같이 조선조와 明朝는 서로 ‘다른 하늘’일 수가 없어서 당시 조선조는 세종 때에도 明나라 ‘正統’年號를 쓰고 있었고, 漢文은 日本을 포함해서 어느 朝廷에서나 쓰고 있던 行政用 言語였기 때문에 ‘訓民正音’은 더 편리하기 위한 ‘추가’이지 眞書(한자)로부터의 離脫시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訓民正音은 百姓에게 ‘漢字’의 ‘正音’을 가르친다는 뜻” 鄭愚相 ‘語文생활’ 5월호 참조)
‘東國正韻 序文’에서 보면 “或 加減點劃 或 依 漢音 或 從 俚語 而 字母七音…”으로 나와 있는데 ‘訓民正音’은 여기에서 ‘俚語’에서 필요로 한 ‘表記’방법, 즉 ‘발음기호’였고 새 文字(오늘날의 한글)의 창제는 (朝廷 內에서 마저 계속 잘못되어 가는) 漢字 發音의 ’되잡음’이 출발점에 있어서의 주된 目的이었던 것이다.
序頭로부터의 논지를 다시 한번 강조해서 사람들의 의사소통방법은 ‘소리 말’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視覺記號를 활용한 廣範圍한 의사소통 방법이 활용됐던 것이다. 그리고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朝鮮朝 말까지, 그리고 조금 전까지 중요한 업무에는 漢字가, 그리고 사사로운 일에는 ‘諺文’이 병용되어 왔던 것이다.
지금 多樣性의 시대에 國際競爭에 노출된 상황에서 ‘communication(의사소통)’이란 우리 나라 장래가 걸려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시대발달에 따라 사람 생각의 활동무대인 ‘意域’의 폭발적인 확대로 해서 글 쓰기가 ‘한글’이란 한 벌의 ‘바탕글자(가나다…)’에 한정되는 것이 대단히 불편할 때가 많아졌다.
더 나아가서는 한국어 文章을 씀에 있어서 高等敎育을 받은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한국 현실을 감안해서 간단한 英語 單語까지 혼용을 해서 ‘세밀한 “결”까지 표현할 수 있는 强力한 韓國語로 옮겨가는’ 擴張이 요구되는 時代가 된 것이다.

12. 記號數가 큰 文字 體系여야 정보량이 크다

“동원할 수 있는 記號가 많을수록 그 言語는 强力하다(엔트로피-가 높다)”는 情報理論의 원리를 감안해서도 漢字圈에 있어서 풍부한 個數의 ‘記號’로서의 漢字의 중요성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 있어서 일찍이 學習을 통해서 머리 속에 여러 가지 ‘記號(한자)’를 새겨 둔다는 것이 빠른 解讀, 그리고 신속한 思考活動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도 자명하다.
漢字 등 高速照會用 기호의 暗記, 그리고 腦裡定着은 현대를 살기 위한 최소한의 準備이고, 오늘날 한국에서 년간 80억원을 상회하는 검정사업이 펼쳐지고 있는 바여서 漢字의 기초실력은 원활한 문화생활을 위한 필수資格임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기초되는 漢字知識이 머리 속에 있다는 것은 깊이 있는 한국어 구사에도 불가결한 것이고 많은 생각을 高速으로 處理함에 있어서도 반드시 요구되는 基礎라고 하겠다.
자기 땅에 스며있는 문명의 덕을 보지 않는 인류가 없는데 지금까지 100餘年間 한국인이 놀라운 속도로 이룩한 歐美의 機械文明에 추가해서 동양의 精神을 깊이 있게 터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동양의 지혜를 밝히는 데에 필요한 古典에 통달한 어른들이 지금까지는 사회가 어떻게 잘 못 돌아가건 觀察만 해왔지만 이제는 행동하는 事例가 생기고 있다. (例를 들어 전직 13 문교장관 들의 初等校에서의 漢字敎育건의<2002년 2월>, 그리고 이번 16 전직 국방부장관의 2차에 걸린 국방 정책 建議<2006년 7월> 등)
한국에도 이 땅으로서의 智慧가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들이 있다. 이러한 민족의 저력을 정치와 언론이 ‘짧은 서양 교육의 잣대로’ 잘 못 평가한 나머지 全體社會를 무리하게 ‘가공’하려 하고 있는 데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13. 結言

이러한 이유로 해서 政治家와 行政機構는 지난 한 세대가 무리하게 강행했던 漢字배격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고 (너희들이 4聲, 91韻, 23母에 관해서 뭘 안다고…세종정신) 민족 知性의 百年 大計를 위해서 어려서 부터의 漢字교육에 나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원활한 communication을 위해서 聽覺에만 의존하는 흐름을 떨치고 漢字라는 ‘視覺性’의 강력한 도움을 되찾는 大乘的 지혜를 결단해야 한다.
서양식인 ‘音聲 중심 言語觀’에의 狂信的인 偏倚, 그리고 특히 ‘科學과 기술’ 등 劣等感 刺戟的인 流行語에 떠밀려 제 민족의 우수성을 모르고 歐美人들보다 자국인을 더 貶視하는 ‘先進國타령’의 양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리의 秩序와 精神文明, 그리고 우리의 옛 멋도 되찾게 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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