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費禕): 살아서는 중류지주(中流砥柱), 죽어서는 천고미단(千古謎團)

글: 역사기실정유취(歷史其實挺有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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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16년(253년), 정월 초하루, 삼국 촉한의 대장군부(大將軍府)는 화려한 등과 오색 띠가 걸렸다.

대장군부의 주인은 당연히 대장군 비의(費禕)였다.

비의는 오늘 매우 기뻤다. 촉한조정이 그로 하여금 한수(漢壽)로 나가 지키도록 허락했고, 그의 개부(開府)를 허가했다. 확실히 조정은 그를 중점적으로 배양하고자 하였으며, 아마도 자신이 이후 승상의 자리를 맡을 터였다.

그래서 이 날, 각지의 촉한관리들중 비의와 약간의 교분이 있는 사람은 모두 대장군부로 가서 축하했다.

모두 잔을 들고 음식을 먹으며 술을 마셨다. 가무소리가 은은하게 들렸고, 촛불은 흔들렸으며, 분위기는 최고조로 끌어오른다.

술잔이 3배 돌고나서, 곽수(郭脩)라는 촉한장령이 앞으로 나와 술잔을 권했다. 곽수는 좌장군(左將軍)이고, 평소에 비의와 관계가 좋았다. 당연히 비의는 비교적 관대한 사람이어서 어떤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비의와 같은 시기에 살던 사람 그리고 후세의 사람들이 그에 대해 내린 평가는 호평 일색이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손권(孫權): 그는 천하의 숙덕(淑德)이며, 반드시 촉의 고굉(股肱)이 될 것이다(<삼국지.권44>)

사마광(司馬光): 비의는 성격이 겸손하고 소박하며, 나라의 공명으로는 장완(蔣琬)에 비견할 만하다(<자치통감.권75)>

또 하나 살펴볼만한 문구는 다음과 같다:

<삼국지.권43)>: "의초견비의위대장군(嶷初見費禕爲大將軍), 자성범애(恣性汎愛)...."

무슨 뜻인가? 의미는 이러하다: 이 비의는 권력을 잡은 이후 사람들에게 너무 잘 대해주었고, 부하들과 너무 관계가 가까웠으며 사람들을 대하여, 비의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촉국에 당시 장의(張嶷)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비의에게 권한다. 동한(東漢)의 개국명장이며 운대이십팔장(雲臺二十八將)중 한명인 잠팽(岑彭)은 직위도 높고, 권력도 컸다. 대군을 이끌고 행군하여 전투를 벌였는데, 하인으로 변장한 자객에 의해 암살당한다. 그리고, 같은 동한의 개국명장인 래흡(來歙)은 역시 대권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역시 자객에게 암살당한다.

그들은 모두 당신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사람이다. 그러나 암살을 당했다. 그러니 당신은 경계를 강화해서 이를 교훈으로 삼아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비의는 그 말을 신경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곽수는 다가와서 술잔을 권했다. 비의는 약간 술기운이 돌았지만, 웃으면서 술잔을 들어, 곽수와 술잔을 부딛친다.

바로 이 전광석화의 순간에, 곽수는 돌연 안색을 바꾸면서, 품에서 날카로운 칼을 꺼내, 비의의 가슴을 찔러버린다.

선혈이 새해 첫날의 연회에 뿌려졌고, 촉한정권의 일인지하만인지상의 대장군이 이렇게 곽수의 손에 죽임을 당해버린다.

당연히 공공연한 암살이었으므로, 비의가 죽자, 곽수도 그 자리에서 주살당한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목숨이 사라진 것이다.

곽수는 자가 효선(孝先)이고, 양주(凉州) 서평군(西平郡) 사람이다. 그는 위(魏)나라사람이었다. 그의 위나라에서의 관직은 중랑장(中郞將)이었는데, 3년전에 촉한의 위장군(衛將軍) 강유(姜維)가 서평을 공격했고, 곽수는 전투에 패배한 후 강유에게 포로로 잡혀 촉한으로 끌려왔다.

삼국시기, 위,촉,오 삼국은 모두 항장(降將)을 우대했다. 이는 상대방의 호감을 사서, 선전하고 기세를 올리는 일종의 수단이었다. 곽수는 포로로 잡힌 후, 촉한정권에서 그를 크게 우대해주었고, 그를 좌장군으로 발탁기용했다. 촉한에서 좌장군이 얼마나 높은 지위인지 아는가? 직전에 이 직위를 맡았던 사람은 바로 오호장(五虎將)중 한명인 마초(馬超)였다.

그런데, 곽수는 왜 비의를 암살했을까?

먼저, 현재 여하한 사료에도 곽수와 비의간에 원한이 있다는 내용이 없다. 곽수는 개인적인 동기가 없다.

다음으로, <고금도서집성.제2711권>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곽수는 유선(劉禪)을 암살하고자 했으나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매번 축하때마다 절을 하면서 앞으로 나갔으나, 유선의 좌우에 제지당했고, 일을 성사시킬 수 없었다.

그 뜻은 곽수가 원래 암살하려던 목표는 촉한의 후주 유선이라는 것이다. 그는 황제를 암살하고자 했으나, 유선의 보안이 비교적 강력해서, 곽수는 손을 쓸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목표를 촉한의 2인자인 비의로 바꿔었다는 것이다.

이 기록은 터무니없다. 우리는 또 다른 조위가 간첩을 적국에 침투시킨 실제사건을 참조해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230년 위명제(魏明帝) 조예(曹叡)는 대신 은번(隱蕃)을 동오(東吳)에 보내 잠복시킨다.

은번은 동오에 도착한 후, 동오의 중요대신이 된다. <오록(吳錄)>에는 은번의 임무를 이렇게 기록한다:

"영구작정위직(令求作廷尉職), 중안대신이이간지(重案大臣以離間之)"

조위조정이 그에게 요구한 것은 동오에 가서 고위직에 올라, 그들 사이를 이간질하여 내분이 발생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조위조정은 은번에게 손권을 암살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당시 은번이 이미 완전하게 손권의 신임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조위는 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건 유선을 암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손권을 암살한다고 동오가 붕괴되지 않는다. 유선을 암살하더라도 촉한이 돌연 붕괴하지 않을 것이다. 삼국시대이후에 자객을 보내 적국의 통치자를 암살하면, 그저 전쟁이 발발할 뿐이고, 상대편에 군대를 일으킬 명분만 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곽수가 비의를 암살한 사건이 발생한 반년후, 조위는 조서를 내려 곽수를 표창한다. 곽수는 충의지사이며 국가를 위해 희생했다고 말하면서.주목할 점은 반년후에 표창했다는 것이다. 즉 곽수는 기본적으로 조위에서 파견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반응시간을 볼 때, 조위는 그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의심스러운 점은 동오에서 발표한 곽수를 표창하는 조서에 곽수의 직무를 돌연 중랑장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전에 조위의 사서에 곽수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다. 기실 이 직무는 아마도 추증된 것일 것이다. 즉, 곽수의 사후에 조정에서 추가해준 것이다. 조위의 당시 내부상황은 아마도 이러했을 것이다:

곽수가 비의를 죽였다. 그도 죽었다. 고대에는 소식이 바로 알려지지 않으므로, 반년후에 비로소 조위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위조정은 그 일을 들은 후 서로 얼굴을 바라보면서,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았다. 곽수가 도대체 우구인가? 왜 들어본 적이 없을까? 그는 어떻게 비의를 암살할 수 있었을까?

대신들은 상의를 거듭했고, 어쨌든 죽은 사람이 촉한의 대장군이니, 객관적으로 조위에 유리한 일이었다. 그런 사실을 우리는 표창해야 한다. 그래서 조위조정은 조정내부에서는 누군지도 잘 알지 못하는 곽수에게 중랑장이라는 관직을 추증했다. 마치 조위조정이 곽수를 파견하여 비의를 암살하는 일을 완료한 것처럼.

이건 조위로서는 그냥 주운 셈이다.

실제로 조위 곽수를 보내 비의를 암살할 이유가 없었다. 왜 그런가?

비의는 성격이 좋았다. 제갈량(諸葛亮)이 살아 있을 때, 제갈량 수하의 위연(魏延)과 양의(楊儀)는 물과 기름같았다. 조정에서 두 사람은 거의 몸싸움을 벌일 뻔했다. 그걸 거중조정한 사람이 비의였다.

그는 품성이 좋았다. 비의는 촉한의 2인자로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지만, 생활은 매우 소박했다. 입는 의복은 일반백성들과 다를 바 없었고, 1년 사계절 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다. 궁을 드나들 때도 수레를 타거나 말을 타지 않고, 걸어갔다. 일반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비의는 정치적업적도 있다. 비의가 있을 때 촉국의 GDP는 크게 오른다. 백성은 특별히 안거낙업했다고까지는 할 수 없을지 몰다고, 상대적으로 이전보다 살기 좋아졌고 안정되었다. 국내에 사회갈등도 없었으며, 큰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다만, 비의는 수성지상(守成之相)이다. 그는 왕좌지재(王佐之才)가 아니었고, 장안을 평정하고, 강동을 공격하는 웅재대략도 없었다. 그의 내증으로는 촉한을 안정시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전심전력을 다한 것이다.

비의는 주전파도 아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북벌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위가 아무런 이유없이 비의를 암살하려 했을까? 암살한다면 주전파의 지도자인 강유(姜維)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은가?

기실, 강유가 이번에 병력을 이끌고 나가 양주 서평을 친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할까. 양주를 공격하기 1년전에, 강유는 병력을 이끌고 옹주(雍州)를 공격했었는데, 아무런 성과도 없이 퇴각했다. 1년후에 그는 다시 병력을 이끌고 출정했고, 이번에는 직접 옹주를 우회하여 양주를 친다. 이는 강유가 가까운 곳을 놔두고 먼 곳을 쳤다는 것이다. 양주를 함락시킨다고 하더라도, 그 땅은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강유가 이번에 양주를 친 것은 그저 곽수를 포로로 잡아오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강유가 이번 전투를 벌인 이유가 곽수를 붙잡아 와서 촉한의 진영에서 일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그렇게 한 목적이 무엇일까?

<북해삼고(北海三考)>에 이런 말이 있다:

유위인호립공명(維爲人好立功名), 음양사사(陰養死士), 불수포의지업(不脩布衣之業)

강유는 공을 세우고 이름을 날리고 싶어했으며, 몰래 결사대를 키웠다. 그는 보통사람들처럼 살고자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가능성은 없을까? 곽수는 바로 그가 고른 결사대원이고, 강유의 지시로 비의를 암살한 것이 아닐까? 어쨌든 비의가 죽은 후, 강유는 즉시 권력을 장악했으며, 그는 비의가 죽은 것으로 인한 최대의 수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자세히 생각해보면 그것도 그리 가능성이 크지 않다.

왜냐하면 강유와 비의는 조정에서 협력한지 이미 오래되었고, 그들은 기실 본질적으로 모두 북벌사업의 계승자들이었다. 그들 사이에 갈등은 있었지만, 그것은 업무상의 갈등이었다. 북벌이냐 휴양생식(休養生息)이냐의 갈등이다. 이런 갈등은 개인차원으로 승화되지 않을 것이다. 양보해서 말하자면, 곽수는 원래 강유가 데려온 사람이다. 강유가 곽수를 보내 비의를 암살했을까? 그렇게 멍청한 짓을 했을까? 암살을 그렇게 드러내놓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곽수가 강유를 위해 목숨을 바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곽수의 촉한에서의 신분은 노비도 아니고, 하인도 아니다. 그는 정식 무장이다. 곽수는 원래 보통사람이 아니었고, 그는 양서의 서평곽씨(西平郭氏)이다. 조위의 위명제의 황후와 동족이다. 당연히 현재의 곽황후는 이미 곽태후가 되어 있었고, 이 곽태후는 조위정권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비록 이때 조위정권은 사마씨에 의해 권력이 잠식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곽황후의 말은 영향력이 컸다. 조위의 많은 사람들이 사마씨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킬 때, 모두 곽태후의 이름을 내걸었다. 사마씨가 황제를 폐위시키고 새로 세울 때도 모두 명목상으로는 곽황후의 의지(懿旨)를 받아야 했다.

곽수는 또한 조위의 중랑장이다. 또한 조위 곽황후와 동족이다. 그는 어떤 각도에서 보자면 존귀한 출신이다. 그런데 어찌 강유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인가?

그렇다면, 곽수가 비의를 암살할 동기에 관련하여 아무런 증거가 참고자료가 없는 상황이다.

비의는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에 사업이 전성기에 접어들었을 때 알수없는 이유로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에게 암살당한다. 그리고 강유는 이로 인하여 후세인들에게 계속하여 이 암살사건의 배후로 의심받았다.

조위에서 곽수의 비의암살에 대해 충분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배송지(裴松之)가 <삼국지>에 주석을 달 때, 곽수와 배의는 서로 원한이 없었고, 조위가 곽수에게 비의를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다고 보았다. 그리고 곽수는 강유에게 포로로 잡힐 때 절개를 지키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비의를 죽이고, 스스로의 목숨도 잃는다. 이건 무슨 사생취의(舍生取義)의 행동으로 보이지 않고, 그저 미치광이의 짓으로 보인다.

그런데, 바로 이 미치광이가 역사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비의가 조정을 운영할 때, 강유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제갈충무서(諸葛忠武書)>: 우리는 승상(丞相)에 훨씬 못미친다. 승상도 중원을 평정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우리는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차라리 보국치민(保國治民)하고, 사직을 지키는 것이 낫다. 공업(功業)을 이루는 것은 후일 능력있는 자에게 맡기자.

비의는 그저 말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정말 그렇게 했다. 그는 살아있을 때 강유를 많이 견제했다. 매번 강유가 북벌을 요청할 때마다, 비의는 제한을 두었다. 매번 그에게 준 병력이 만명을 넘지 않았다.

기실 거시적인 각도에서 보자면, 비의의 정책은 촉한의 국정에 부합했다. 제갈량이 매년 정벌에 나서면서 이미 익수는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이러한 때는 그저 휴양생식할 수밖에 없다.

다만, 비의가 죽자, 아무도 강유를 견제할 수 없게 된다. 강유는 즉시 대규모북벌을 진행한다. 그후 매년 병력을 일으키고, 궁병독무(窮兵黷武)했다. 조정은 금방 빈곤에 빠지고, 강유가 일년내내 병력을 이끌고 외지에 나가있는 바람에, 내정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황호(黃皓)같은 환관이 나타나게 된다. 촉한은 이렇게 하여 하루하루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연희16년 정월초하루는 촉한의 마지막 황금시대에 비의의 죽음과 더불어 마침표를 찍게 된다.

곽수가 왜 비의를 암살했는지에 대하여는 정말 오직 하늘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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